Hyung-Geun Park
Artist, Photographer
Fishhooks, 태양을 삼키는 달의 그림자
아침부터 매스컴은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시끄럽다. 하필 매일 오가는 시화 방조제 근처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사체의 일부가 발견될 줄이야. 오디오 볼륨을 한껏 높이고 차 창문을 내렸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영국 출신 락밴드 트래비스의 “Writing you reach you”가 경쾌하게 차 안을 때린다. 유난히 맑은 하늘에 콕 콕 박혀있는 공장 굴뚝들은 연신 뿌연 구름을 토해내고 있다. 새하얀 물감이 투명한 허공에 흩어져 가는 모습이란, 언제 봐도 낭만적이다. 거대한 레고 블럭 모양의 공장 풍경이 눈 앞에서 멀어질 무렵 갑자기 숨쉬기 힘들 만큼 역겨운 냄새가 훅하고 달려든다. 핸들을 붙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코 근처로 향하고 있다.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에 험한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고, 현기증에 취해 승용차 머리는 도로 난간을 아슬 아슬하게 스쳐 지난다.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고약한 화학물질의 엄습은 짜증스럽도록 위협적이다. 바깥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주변 공단에서 배출하는 각종 오염물질은 상상키 어려운 악취를 동반했다. 차 창문을 올리기에, 이미 늦어버렸다. 어리석게도 매번 후각을 때리는 냄새에 반응한 후에야 후회하곤 한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으나, 이 지점을 지날 때면 본능적으로 호흡을 멈추고 시선을 멀리 두는 습관이 생겨났다. 역한 냄새를 잠시 잊을 만큼 고가 도로 너머의 풍경은, 제법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큰 언덕 섬, 대부도로 가는 방조제 초입에 검정 제복들의 움직임이 분주해 보인다. 아마도 피해자의 나머지 사체를 찾는 모양이다. 길이가 12km나 되는 시화 방조제엔 그 흔한 감시 카메라 하나 없다. 어둠을 틈타서 찾아 드는 낯선 방문객에게 이 곳은 어떤 일을 벌이기에 최적의 장소이겠지. 하긴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시화호와 그 주변은 언제나 수 많은 논란의 중심이었다. 환경 파괴와 오염 문제를 비롯한 강력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탓에 어둠의 지역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화 방조제 중간에 마련된 대형 휴게소는 최근 들어선 고층 전망대의 인기로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의 수만큼, 사람들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바다와 섬을 향해 연일 밀려들고 있다. 섬은, 이제 고요할 날이 단 하루도 없어 보인다. 외부 방문객을 위한 음식점, 편의 위락시설, 숙박시설들이 섬의 도로변을 차츰 채워나가고 있다. 이 지역 명물인 칼국수집들은 모두가 원조를 주장하는 간판으로, 과일 좌판대에는 수입 열대과일들이, 그리고 전국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첨단 LED문구를 내건 무수한 낚시 용품점들이 밤 낮으로 반짝거린다. 섬의 뿌리(끝)로 향하는 길 위, 바다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어서 괜히 신경에 거슬린다.
지난 몇 해를 서쪽 바다에서 보냈다. 우리나라 경기도 서남부 끝에 위치한 섬, 선감도로 찾아든지도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냥 여행삼아, 나중에는 사진 촬영 로케이션으로 자주 찾곤 하였다. 이제는 뭔가에 이끌리 듯 아예 작업실까지 얻고 눌러 앉아버렸다. 하지만 계절이 몇번 바뀌는 동안 정작 이 섬은 나의 관심밖이었다. 작은 섬 가운데 솟아있는 산과 그 둘레를 휘 감아도는 도로, 포도 밭, 사람 집, 학교, 펜션, 교회, 모텔, 묘지, 당집, 부두, 그리고 바다와 갯벌이 전부인 이 섬은 그저 평범한 보통 섬이었다. 평화로운 섬에 대한 인상이 깨져버린 건 작업실 윗층에 살았던 여성작가 M이 들려 준 이상한 꿈 이야기 이후였다. 그녀가 이 곳에 작업실을 얻고 난 후 처음 잠을 청했을 때 부터 여럿의 아이들이 그녀의 침소로 찾아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추위를 호소하며 그녀의 방으로 스며드는 악몽이 며칠째 계속되면서 M은 결국 이 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때문에 그녀의 밤을 힘겹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금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이 섬의 과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1987년 시화 방조제 공사와 간척사업이 시행되면서 경기 서남부에 위치한 많은 섬들은 사라지거나 육지와 이어졌다. 연육되어진지 불과 2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 한데, 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포도 농사와 어촌 체험장으로 유명한 선감도가 사실은 과거에 악명 높았던 선감학원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부랑자 보호시설의 명목으로 원생들에 대한 엄청난 착취와 희생 그리고 죽음이 공공연히 자행되던 비정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몇 달 전에 우연히 만났던 선감학원 생존자의 증언은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형언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지독한 통증으로 다가와서, 애써 듣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해버렸던 적이 있다. 그건 내 마음 한 켠에 쌓여 있는 어두운 역사에 대한 기억들, 아버지가 들려 주시던 제주4.3사건의 참혹함 , 학창시절 암실에서 인화했던 5.18기록 필름에 담겨있던 무수한 죽음들, 그리고 이 곳 선감도의 은폐된 진실까지, 광기의 역사는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확신어린 두려움 때문이다. 역사를 이루는 고통의 무게는 때가 되면 밀려갔다 다시 돌아오는 바닷물처럼 무심하게 되풀이 된다. 우리 근현대사에는 이처럼 이해 불가한 아픔과 상처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무감각해진 것일까, 사람들은 더 이상 남의 아픔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이 섬의 슬픈 역사도, 그래서 흥미로운 과거의 한 자락을 완성하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아니면 특별한 과거의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탁월한 예술적 소재 또는 매력적인 관광사업자원 정도로 보인다. 갑자기 수 많은 원생들이 죽음의 탈출을 위해 건너야만 했던 갯벌 섞인 바닷물이 콱하고 목구멍에 틀어 박혀 역류한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간절하게 건너야만 했던 바다가, 파도가, 달 빛이, 안개가,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맥없이 흩어져 간다. 해 뜰 무렵부터 짙어지기 시작한 푸른 안개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가리고, 멈추어, 흐느끼게 하고 마침내 숨죽여 이 섬에 머물게 한다. 이 섬뿐만이 아니라 경기도 시화호 주변 지역은 거대한 바닷물을 가로 막은 방파제와 곧게 뻗은 도로, 새롭게 생겨난 면적만큼의 대지와 반비례하여 바다는 줄어들었고 갯벌과 섬들은 하나 둘씩 지도 위에서 지워져 나갔다. 물론 가시적인 변화 이면의 상황은 훨씬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연결이었으나,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 곳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눈 앞에서 사라졌던 바닷물이 12시간후면 거짓말처럼 다시 차오른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육지도 바다도 아닌 중간지대를 형성하는 곳, 그리하여 이 섬의 시간은 태양과 달이 만나는 때를 보여준다. 자연을 변화시키고 소유하려는 인간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구의 바다는 달과 주고 받는 힘의 작용 속에 본래의 움직임을 지속할 뿐이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안에서 진행중인 또는 이미 완료되어진 간척사업은 부족한 영토를 늘린다는 명분 아래 바다를 육지화시키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수심이 얕고 완만한 지형을 가진 서해안은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의 주 대상지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에 실시한 농경지 확장을 위한 사업, 그리고 개발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친 1970년대 이후 부터 최근까지 시행된 간척 사업들은 발전을 위한 필요성과 환경파괴라는 양가적 문제를 동시에 포함한다. 1920년대 이후 건설된 방조제의 수량만큼 해안선의 형태도 크게 변하였는데, 울퉁 불퉁하던 곡선은 반듯한 직선모양으로 정리되어갔다. 지난 100년동안 이 땅의 지형 변화는 자연발생적이라기 보다는 인간들에 의한 개입과 변형의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형성된 환경 변화가 실제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환경 변화가 인간의 역사 진행의 중대한 발생요인이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섬과 섬 사이를 잇고, 다시 육지와 섬을 이어 하나의 지형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불가피한 희생과 피해를 발생시킬 수 밖에 없는 부자연스러운 개입이었다. 이미 깨져버린 자연의 순환 리듬속에서 인간 본연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의지 또한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더욱 심각한 위기상황을 초래하였다. 예를 들자면 강과 바다사이를 흐르던 물길이 가로 막힌 후에 물고기들은 더 이상 넓은 대양과 깊은 대륙을 오가며 살 수 없게 되었다. 아침마다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로드 킬의 피해 생명들, 광물 채취의 목적으로 흉칙하게 깍여져 나간 섬의 얼굴, 그리고 더 이상 생명의 보고가 아니라 죽음의 바다로 변해버린 갯벌은 지금까지 발생한 암울한 상황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확한 정보와 수치로 정리되지 않은 이 어두운 지대에서 혼란을 보완해주는 대안은 오직 인간들을 위한, 아마도 이 곳을 보다 편리하게 개발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최첨단 소프트웨어일 뿐이다. 근대화 이후, 혹은 인간들이 지구의 표면을 장악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연, 영토, 자원, 개발의 문제는 인간들의 범주 안에서 기획, 실행되어졌다. 인간들의 영역 확장을 위한 욕망의 실천만큼 멀어져버린 것, 그것들과의 공존은 지극히 소원해보인다.
다시 섬을 바라본다. 바닷물이 가득 차 오를 즈음 하나 둘씩 모여들어 낚시대를 드리운다. 밀려드는 희뿌연 물길 아래 굶주린 것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 존재들은 그들만의 감각에 의지한 채 낯선 것들을 삼키고 걸러내는 일을 반복한다. 견딜 수 없는 유혹의 성찬 속에 안전한 것들만 골라 먹어야 한다. 타고난 감각과 후각은 오히려 제어,억제해야 한다. 낚시 바늘 끝에 꽂혀 버둥거리는 지렁이, 토막난 살점의 피비릿내 진동하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살아 날 수 있다. 하여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깊숙히 삼키지 않아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잘라 먹어야 살 수 있다. 은 빛 낚시 바늘의 아름다움을 거부해야 살 수 있다. 눈부신 태양의 시간을 삼키는 달의 그림자 그 아래 숨겨 온 어떤 진리가, 원칙이 아직까지는 유효하다고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형근.2015